30년 자영업자의 7단계 몰락 과정, '열심히 할 게 없는' 상태로 귀결되는 비극

프랜차이즈점주로 살아온 30년 자영업자가 몰락하는 과정



첫 성공과 첫 위기: IMF에 시작한 '쪼끼쪼끼'의 영광과 경쟁자의 등장으로 무너진 '안정'


100% 소설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퇴직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1997년 IMF였습니다.

공부는 잘하지 못했어도 학창 시절부터 대학교까지 최선을 다해 한 길만 걸어왔고, 화이트칼라는 아닐지언정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그 무렵 결혼까지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력도 인정받으며 기능공으로서 남들보다 뛰어남을 인정받아 연봉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커가고, 나라가 망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회사에서 정년을 마칠 생각으로 그 길 외에는 다른 선택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리해고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머리에 두건을 쓰고 싸우러 나갈 때, 저는 앞으로 우리 가족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결국 퇴직금이라도 조금 더 받고 나오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다행히 차곡차곡 모아둔 예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회사를 나온 후, 마치 출근하는 것처럼 집을 나서 창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창업 - 쪼끼쪼끼 맥주집

그렇게 처음 창업하게 된 게 쪼끼쪼끼 맥주집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체면도 있었고, 보통 동네 맥주집은 지저분한 분위기에서 치킨을 튀겨 팔았지만, 나름 깔끔한 분위기에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기에 그래도 나이들어 창업하는 입장에서 조금은 품위 있어 보였습니다.

그렇게 1998년, 첫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퇴직금 1억 5천만 원과 예금 일부 5천만 원을 합쳐 총 2억 원을 들여 창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IMF로 인해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넥타이 부대들은 여전히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저렴한 분위기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한 후, 2차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이 깔끔하게 인테리어 된 우리 가게로 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40평짜리 맥주집에서 한 달 3천만 원을 팔면 1천만 원은 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이들 학비를 내고, 어렵다며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아내도 집에서 애들을 돌볼 수 있었으며, 그렇게 5년간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경쟁자의 등장, 첫 번째 위기

장사에 자신감이 생기고, 단골도 쌓이던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 맥주집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호텔 안주로 즐기는 맥주가 유행하며 레스토랑 펍(서유기, 치어스 등)이 생겼고, 

기존의 맥주집들과는 차별화된 비어캐빈, 비어헌터, 비어슬램 등 얼음잔에 맥주를 주는 브랜드들이 등장했습니다.

젊은층들이 리드하면서 가족손님들과 샐러리맨들이 새로운 브랜드로 몰리면서, 어느 순간 우리 매장이 한물간 브랜드가 되어버렸습니다.

매출은 급격히 하락했고, 문제는 그동안 쌓아둔 자금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축보다는 안정적인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소비를 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수익이 급감할줄은 몰랐어요 그 사이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었고, 아내도 일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 달 400~500만 원의 수익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국, 처음 투자한 돈을 다 회수하지 못하더라도 절반이라도 건지기 위해 가게를 내놓았으나 택도 없었고, 결국 보증금+권리금 포함 7천만 원에 처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생존을 향한 투쟁: 수입 소고기부터 닭강정까지, 빚과 예금으로 '유행'을 따라간 3번의 실패


두 번째 창업 - 1차+2차를 함께하는 주점

여기저기 알아보니 이제는 경기가 안좋기 때문에 1차먹고 2차를 따로 가는 소비패턴을 벗어나 1차와 2차를 함께 즐기는 주점이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가게 처분 후 남은 7천만 원과 예금 일부를 합쳐 1억 5천만 원이 있었고,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았습니다.

당시 어려운 분위기에서도 청송 얼음막걸리, 피쉬앤그릴, 짱구야 학교 가자, 지짐이 등의 주점 브랜드들이 작은 평수에서도 나름 생존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장사는 고되지만 돈이 된다고 하기에 브랜드를 선택해 창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맥주집과는 완전히 다른 고객층 (젊은 층)

힘든 노동에 비해 낮은 수익

심한 컴플레인

잦은 직원 이탈

첫 달 매출 4만 원에 순이익 1천만 원이었지만, 매일 새벽까지 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가게를 내놓고 적정 권리금을 줄 사람을 기다리며 장사를 하면서 **2년을 버텼습니다.하지만 가게를 인수할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점 장사는 과거 벌었던 수익보다도 훨씬 낫고 무엇보다 너무 힘들어서, 다른 아이템을 찾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 번째 창업 - 수입 소고기 전문점

당시 한우는 너무 비싸고, 수입 소고기가 돼지고기 가격과 비슷한 가성비 갑으로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주점을 업종 변경해 수입 소고기 전문점을 차렸습니다.

유행을 탈수는 있지만 장사는 잘됨

테이블 단가 높고, 마진 좋음

우스, 소가조아, 미트킹, 공룡고기 등 경쟁 브랜드 등장하면서 소비자고객층 증대

주점을 7천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다시 해서 나름 건실해보이는 브랜드로 업종 변경을 했고, 다시 가정에 평온함이 깃들었습니다.

하지만 2년 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고, 또다시 경제가 얼어붙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광우병 사태가 터지면서 “수입 소고기를 먹으면 기형아가 된다”는 소문이 퍼졌고, 손님이 뚝 끊기고 너도나도 공포속에 가게를 내놓고 저 역시 가게를 내놓았지만 안 나가게 됩니다.그래서 또 다른걸 해야 하나 생각을 했는데…. 

문제는 이미 첫 창업 때 퇴직금을 다 쓰고 생활비로 소진했으며, 두 번째 창업 때는 가진 예금 중 일부와 가게 처분한 돈을 모두 사용했고, 세 번째 업종 변경을 하면서 그나마 있던 돈까지 전부 투자했기 때문에 지금은 가진 돈이 겨우 2천~3천만 원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다시 장사를 시작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죠.


구조적 한계: '배달/온라인' 무지 속에 구제역 쇼크를 맞고 '돈과 의지'를 동시에 잃다


그때, 엄청난 맛집 레시피로 무장되어 있고 원가도 저렴하여 장사는 힘들지만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소문난 순대국집을 운영해 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전수 창업비 2천만 원을 주고, 간판만 바꾸어 수입 소고기집을 개인 순대국집으로 전환했습니다. 미친 듯이 수육을 삶고, 장사하고, 배달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순대국이라는 아이템은 아무나 운영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직접 주방에서 돼지 머리를 손질하고 올인해야 했고, 직원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프랜차이즈가 아니다 보니 시스템이 없었고 운영이 어려웠습니다. 결국 아내까지 매장으로 끌어들여 함께 장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기존에 직장인들이 술안주로 먹던 순대국이 가족 단위 손님까지 유입되면서 매출이 제법 나왔고, 무엇보다 돼지 머리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아내와 아주머니 두 명을 두고 운영하면서 나름 먹고살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구제역 사태가 터지게 됩니다.

그 값싼 돼지머리가격이 급등하고, 품귀현상까지 오게 되고,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물량확보를 하면서 생존을 했지만, 우리집은 오히려 물량이 줄어들어 공급자체가 어려워 원가가 폭등하게 되니 아무리 장사를 해도 안남는 상황…. 


나름 살아보고자, 순대볶음도 만들고 순대라면도 만들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시도해 봤지만, 결국 재고만 남고 아줌마들과 함께 가게에서 노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와중에 구제역으로 인해 돼지고기 수급이 어려워지자 정부에서 수입 돼지고기를 도입했고, 경쟁 브랜드들은 계속해서 생겨났습니다. 이 힘없는 개인 순대국집이 버텨낼 수가 없더군요.

어느 날, 블로거인지 뭔지 모를 사람들이 가게에 와서 포스팅을 했는데, 우리 가게가 지저분하고 돼지 냄새가 심하다는 악성 글이 올라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확인조차 하지 못했고, 저는 그저 원래 하던 대로 장사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신규 고객들은 이런 나쁜 소문에 휘둘려 오지 않았습니다.

역시 혼자서 장사를 해보니 완전히 무방비로 털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난 역시 혼자 하면 안 되는구나. 프랜차이즈를 해야 하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다시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여지껏 30평, 40평 규모의 장사를 해왔는데, 지금 창업시장에서는 10평짜리 닭강정집, 10평대 스몰비어, 10평대 식빵집, 10평대 카스테라, 벌집아이스크림 등이 무척 유행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눈에 들어온 건 닭강정집이었습니다. 10평짜리 매장에서 수입 닭고기, 특히 닭다리 부분만을 들여와 강한 양념을 입혀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군요.

돈이 없어서 더 이상 투자 여력이 없었지만, 가게를 처분한 돈에 아내의 적금을 깨고 담보대출까지 얹어서 계산해 보니 점포비와 시설비를 합쳐 1억 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10평짜리 닭강정 프랜차이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꿀닭, 가마로강정, 우리집강정 등 다양한 닭강정 브랜드가 미친 듯이 생겨났고, 닭강정집을 운영하다 보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단가가 너무 낮아 겨울에는 매출이 급격히 줄었고, 경쟁 매장이 몇 곳 생기다 보니 매출이 분산되며 나눠 먹기가 되었습니다. 처음 오픈하고 딱 1년은 괜찮았지만, 이후 매출이 하루 40만 원까지 하락하면서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업시간을 늘려도, 홍보를 해도 가게 매출은 늘지 않았고, 처음에 받았던 물류 가격은 점점 상승하여 물류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결국, 도저히 장사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또 다른 아이템을 찾으려고 하는데…. 문제는 돈이 없었습니다. 투자금이 없는 상태였죠. 그러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요즘 족발이 뜨고 있으며 테이크 아웃으로도 족발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해당 브랜드에 찾아가 족발 전수 및 종물 공급을 받기로 하고, 주변지인과 신용카드대출 2천만 원을 들여 간판을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빚을 져서 족발집을 차리고, 그 고된 족발 장사…. 미친 듯이 삶고 썰고를 반복했습니다. 쉬는 날도 없고, 누구에게 맡기지도 못한 채 아내와 알바 한 명과 함께 미친 듯이 장사를 했습니다.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주변에 족발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났습니다.

경쟁 매장에 치여 고생하다가, 규모로 압도하는 브랜드들에 밀렸고, 팔지 못한 재고를 처분하지 못해 결국 홀 매출도 사라졌습니다. 

결국, 이것도 답이 없음을 깨닫고 좌절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닭갈비집을 운영하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사는 그럭저럭 되는 편이었지만, 그분은 장사를 접으려고 했고, 그와의 인연이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살아남고자…. 그래도 닭강정을 해봤기 때문에 닭에는 자신이 있었고, 테이크 아웃 매장으로는 답이 없다는 걸 알고 그 매장을 인수했습니다. 기술까지 전수해 준다는 말을 듣고 또다시 빚을 얻어 그 매장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레시피를 전수받고, 좋은 재료를 공수해 그동안 쌓인 노하우로 정성껏 손님들을 대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규 고객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있던 가게다 보니 단골들이 다시 찾아와 주었고, 그렇게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코로나라는 것이 터지더군요. 집합 금지로 인해 오후 9시 이전에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닭갈비집은 저녁 장사인데, 사람들이 우리 가게에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무너질 것 같은 찰나, 남들이 배달을 한다길래 '배달의민족'인가 하는 곳에 올리면 된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홀에 손님이 없으니 배달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홀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배달 포장만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얼마나 황당하던지…. 

더 큰 문제는, 배달을 해도 고객 컴플레인 대처를 못하고, 댓글 관리를 해야 한다는데 그것도 모르겠고, 서비스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라서 매출이 들쭉날쭉했습니다. 주변에서 마케팅을 해야 한다고 해서 있는 돈을 탈탈 털어 마케팅 업체에 돈도 썼지만,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또 폭망으로 가는가 했는데 다행히도 권리금을 좀 준다는 양수자가 생기면서 닭갈비집을 처분하게 됩니다.


최종 정착지: 헐값 매물에 간신히 '개인 매장'을 차렸으나 '손님이 안 오는' 무방비 상태


남은돈…. 대출까지 합쳐서 3천인가 4천인가

그 돈으로는 새로운 브랜드를 하기도 어렵고, 인테리어를 새로 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여태껏 다양한 메뉴를 경험해 왔고, 코로나를 겪으면서 넓은 평수의 매장은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조그만 15평짜리지만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고, 헐값에 나온 매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메뉴를 개발하고 개인 매장을 차리게 되었는데…. 메뉴를 만들고 음식을 판매하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손님들이 안와요…. 손님들이 먹어봐야 평가도 하는 것은이데…. 

예전에는 괜찮았던 상권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상권이 나빠졌다는 소식만 들려오고 있습니다. 지금이 주말 저녁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돌아다니지 않고, 간혹 장사가 잘되는 집들은 마케팅을 잘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 것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30년 동안 자영업을 해왔을 뿐인데, 나이는 들었고 아내는 아프고, 아직도 내가 돈을 벌어야 자립하지 못한 자식들을 건사해야 하는데…. 앞으로 10년은 더 일해야 하는데…. 


결론: 창플 법칙, 30년의 노력이 '열심히 할 게 없다'로 끝난 비극적 이유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 자신은 있는데…. 


지금 내가 열심히 할게 없어요…. 

이 매장안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남는재고로 만든 메뉴로 소주한잔하고 집에가는 시간이 많아지고, 

내가 왜 이렇게 됐지…. 

사실…. 나는 지금


좀 지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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